타이포 한글부적 제작기 [사물에 깃든 마음 展 참여작]

⚪️ 사물에 깃든 마음

화성시 역사박물관의 기획 전시 [사물에 깃든 마음]에 현대 작가 7인 중 한 명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화성시 역사박물관은 화성시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일상적 유물을 다수 전시하고 있는 독특한 곳인데요. 올해 초, 박물관에서 전시를 기획하며 저에게 참여 제안을 주셨고 의미 있는 전시라고 생각하여 기쁘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물에 깃든 마음]은 일상적 유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전시입니다. 옛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하는 유물을 전시하고, 그 유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현대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것이 이 전시의 기획 의도입니다. 저는 유물 중 부적 도장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제안받았습니다.

⚪️ 부적 도장

사진 : 부적 도장, 한국 - 조선, 이미지 출처 : E뮤지엄(전자정부 누리집)
부적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이 보호, 건강, 행운과 같은 바람을 담아온 주술적 도구입니다. 특히 부적 도장은 사용자가 간절한 마음으로 필요한 곳에 직접 찍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번 전시에서 저는 이 부적 도장을 재해석하여 현대적인 부적을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일반적인 부적이 아닌,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일상용품으로 디자인하여 부적의 의미를 현대적 삶 속에 녹여내고자 했습니다.

⚪️ 부적에 대한 해석

사진 : 부적, 이미지 출처 : E뮤지엄(전자정부 누리집) 부적은 악귀를 쫓고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어 글씨·그림·기호 등을 그린 종이를 가리키는 종교용어이다. 사용 목적과 기능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주술의 힘으로 좋은 것을 증가시켜 이를 성취할 수 있게 하는 부적이고, 다른 하나는 사나 액을 물리침으로써 소원을 이루는 부적이다. *부적의 사전적 정의, 출처 : 한국민속문화대백과사전
부적은 예로부터 악귀를 쫓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에 따라 사용되었습니다. 부적에 있는 기호들을 형태적으로 보면 ‘대칭, 균형, 기하학적 구조, 연결성’ 등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신적인 존재에 대한 상징(도형 혹은 문자), 그들로부터 원하는 것(도형 혹은 기하학적 문양), 그리고 긍정적인 기운을 사용자에게 안정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형태(대칭, 균형, 연결성)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부적의 특징을 현대적인 소품으로 활용하기에 [모빌]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빌이 안정적으로 공중에 걸려있기 위해선 대칭적이고 균형이 잡혀있어야 하기에 부적의 특성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모빌은 각 부분, 그리고 모빌이 걸려있는 공간과도 연결되어 있기에 부적이 가지는 기운의 흐름과 연결성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용자가 살아가는 공간에 이 모빌이 걸려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기운을 사용자에게 지속적으로 전달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이미지 : Dall-E로 추출한 부적의 모빌화

⚪️ 부적에 담을 내용 & 부적 디자인

모빌과 한글이라는 형태로 현대적인 부적을 만드는 것은 정해졌고(*제가 뭘 만들면 사실 대부분 한글 작업입니다.) 이제 어떤 내용을 부적에 담을지 정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바라는 것들 ‘행복, 사랑, 평화, 건강, 성공, 열정, 용기, 회복’이라는 단어를 일종의 모듈처럼 만들고 사용자들이 이 단어를 조합해서 사용자가 원하는 단어 조합으로 부적을 만드는 방식을 생각했습니다.
이미지 : 기획 단계에서 스케치한 모빌 디자인
다만 이 방식은 제 기존 작업들에 비해서 ‘재미’와 ‘강렬함’이 부족하다는 평이 있었고, 제가 느끼기에도 아쉬운 부분들이 있어 단어보다는 짧은 문장 위주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단어 혹은 문장’ 수집하기 시작했는데요. 제가 생각한 것들, 그리고 전시 기획자분들이 생각한 것들, 제 인스타그램 팔로워 분들이 생각한 것들을 1차적으로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투표를 진행했고 그 중에서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하기 좋은것들을 추려서 만들기 좋게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수집한 단어/문장
선택 여부
수정된 단어/문장
이너피스
선택
내면의 평화
뭐어때
선택
뭐어때
넘어서
할수있다 능
아름다움도 두려움도 모두 일어나게 놔둬라
열심히 살자
모든 것은 지나간다
뭐라도되겠지
선택
뭐라도되겠지
잘될거야
선택
잘될거야
두고보자
버텨
선택
버티자
그냥해
선택
그냥해
사랑과행복
선택
사랑과행복

⚪️ 글자 만들기

⚪️ 부적에 대한 해석에서 이야기했다시피 부적은 ‘대칭, 균형, 기하학적 구조, 연결성’이라는 형태적인 특성을 가집니다. 그리고 부적에 들어갈 글자를 만들어낼때 그 부분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형태로 구상했습니다.
특히 연결성이라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부적의 특징을 담아내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하나의 문장이 모빌의 형태로 걸려있기 위해선 문장을 이루는 글자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글자의 형태를 정하는데 있어서 일종의 제약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제약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 재미있는 표현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이 작업이 그랬습니다.
이미지 : 제약이 있는 상태에서 글자의 가독성과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이리저리 테스트하는 모습
아래는 하나의 문장을 이루는 글자들을 하나로 연결하다보니 발생한 독특한 형태들을 모아본 것입니다. 기둥과 기둥이 연결되거나 기둥과 줄기가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실제 모빌로 제작하기 위한 작업이다 보니 하중에 대한 것도 함께 고려해야 했습니다. 얇은 기둥 하나로 버티기에 무게가 무겁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아래의 이미지처럼 장식 요소를 이용해서 서로 연결했습니다.
최종 완성된 형태의 모빌 디자인입니다. 글자 이외에도 장식적인 요소들도 만들어서 함께 걸어보려고 합니다.

⚪️ 모빌&스트랩 키링 제작

이미지 : 커팅이 완료된 아크릴 모빌에 줄을 걸어 테스트 중인 모습
아크릴 커팅을 진행했습니다.(물론 제가 자른건 아니고 전문가에게 의뢰했습니다.) 이렇게 디테일한 아크릴 제작은 처음이라 좀 걱정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깔끔하고 예쁘게 나왔습니다. 아크릴을 고를땐 무광과 유광 중에서 고민이 있었는데요. 상상을 해봤을 때 아크릴 모빌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빛을 반사시키면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유광으로 진행했습니다. 결과물을 보니 유광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지. 스트랩 키링
모빌 이외에 스트랩 키링도 함께 전시 작품으로 제작했습니다. 키링은 최근 몇 년 간 부쩍 인기가 높아진 소품인데요. 사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지니고 다닌다는 특성이 부적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해 이번에 모빌과 함께 제작하게 되었고 함께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 전시장 전경

아직 전시장에 방문하지 못하여,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닌 미술관 그리고 이요안나 작가님께서 찍어주신 사진으로 업로드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전시장 입구, 전시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유물들이 전시된 모습
이번에 참여하신 현대 작가분들의 작가 소개와 작품 설명들입니다.
제 작가 소개와 작품 설명을 정말 너무 멋지게 써주셨습니다. 제가 적어서 드렸던 작가 소개는 분명 이것보다 훨씬 재미도 없고 딱딱하고 별로였는데 역시 전문가의 손을 거치고 나니 너무 멋지게 변했습니다. 앞으로 작가 소개가 필요할 땐 무조건 이것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양진 한글이 가진 예술적 가능성을 포착하고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는 타이포 디자이너이다. 주로 일상과 SNS를 통해 문장을 수집하여,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말을 타이포 디자인에 담아낸다. 그래서 그의 타이포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한글 부적 악귀를 쫓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종교적 믿음에서 사용되었던 부적에서는 ‘대칭, 균형, 기하학적 구조, 연결성’등 독특한 형태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는데, 작가는 이를 신적 존재와 인간 사이의 연결고리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전통 부적의 형태와 상징에서 영감을얻은 <한글 부적>은 일상적 소망을 담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 속의 작은 응원과 동기를 전한다. 작가는 <한글 부적>을 일상에서 사용하기 쉬운 모빌과 스트랩키링 형태로 제안한다.
현대 작품 전시 공간
장윤영 작가님의 문양 보자기 [흉배보, 반도보, 십장생보] 옛 유물을 모티프로 패턴을 만들고, 상징하는 의미를 보자기에 담으셨다고 합니다.
이요안나 작가님의 패턴 디자인 [핑크 쌍학흉배, 매화나무와 새] 쌍학흉배는 조선시대 문관의 관복에서 매하나무와 새는 매화와 작은 새가 자개로 장식된 빗접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한글부적 모빌과 스트랩키링
한글부적 모빌
한글부적 스트랩키링
한글부적 ‘도장’을 관람객들이 직접 찍어볼 수 있는 체험공간도 전시장 한켠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 참여 후기

저는 한글을 이용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려고 하지만 보통은 그래픽 이미지를 만들거나 프린트를 하는 방식이 대부분인데요. 이번에 화성시 역사박물관에서 좋은 기회를 주셔서 실제로 손에 잡히는 오브제를 제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저에겐 특히 작업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배움이 있었고, 앞으로의 작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제공해주신 전시 관계자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더 많은 한글 작업은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link iconInstagram (@yangjin.c)